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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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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무대,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등장한다. 잠시 후, 또 다른 여성이 나타나 어지러이 놓여진 가구들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안무를 선보인다. 그리고 그 여자의 앞의 가구들을 모두 치우며 다치지 않도록 정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안무의 혁명가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 중 하나 <카페 뮐러(Café Müller)>는 그렇게 시작한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의 부재, 고독과 외로움을 말보다 더 정확하고, 그림보다 아름답게 표현한 이 작품은 피나가 보여주고 싶었던 춤의 언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렇듯 피나는 말보다는 몸을 이용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춤을 통해 끝없이 말을 걸었던 그녀의 언어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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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뮐러> 속 연기 중인 피나 바우쉬

1973년, ‘부퍼탈 시립발레단’은 ‘부퍼탈 탄츠테아터’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해오던 공연과 다른 새로운 공연을 시작했다. 이 무대는 세계 무용계에 던지는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었고, 전 세계를 향한 춤의 매혹이었다. 기존의 무용이 갖고 있던 관습과 통념을 단숨에 무너뜨린 ‘부퍼탈 탄츠테아터’. 그리고 그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상징이자, 안무의 혁명가 ‘피나 바우쉬’는 그렇게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피나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겸 여관에서 놀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식당에서 항상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구석에서 춤을 추거나 뛰어다니며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분노 등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는 그녀의 감성을 자극해 훗날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카페 뮐러>도 그 중 하나로, 어린 시절 그녀가 느껴야 했던 다양한 감정들에서 기인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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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나의 대표작 중 하나, <봄의 제전>

작은 식당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이후,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아버지라 불리는 ‘쿠르트 요스’에게서 무용을 배운다. 그리고 기존의 고전 발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정형화된 동작의 족쇄를 벗고, 무용에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선사한 스승 요스를 넘어 탄츠테아터(Tanztheater: Dance + Theatre의 뜻으로 춤과 연극의 합성어)를 더욱 확고히 무용계에 각인 시켰다.

그녀가 탄츠테아터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은 ‘부퍼탈 시립발레단’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취임하면서부터였다. 시립발레단의 타이틀을 ‘부퍼탈 탄츠테아터’로 바꾸고, 무대의 성격과 안무들도 그녀의 색으로 채웠던 것. 갑작스러운 변화였기에 기존의 고전 발레를 상상하며 무대를 찾은 이들은 놀랄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따른 거부감마저 갖기 일쑤였다. 특히, 평론가들은 자기도취적인 안무가라고 피나를 비난하기도 했다.


| 그녀의 작품은 기존 무용에 대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춤, 연극, 음악, 미술, 영상 등 모든 예술이 모여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일상의 문제에 직접 마주하는 모습은 곧 피나와 탄츠테아터를 상징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인간의 문제들을 표현하기 위해,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에 집중해 안무가 개인의 내면을 끌어내 이를 통해 무대를 완성해 나갔다. 무대의 조형은 인간을 방해하는 것들로 표현되었고, 이에 맞서거나 부딪혀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몸의 언어를 보여주고자 했다.

초연 된지 35년이 지난 안무들도 현대적으로 느껴질 만큼 시대를 초월한 혁신성을 갖고 있던 그녀의 안무들은 독일의 작은 마을 부퍼탈을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았고, ‘부퍼탈 탄츠테아터’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투어를 하는 단체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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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전체에 깔린 물은 무용수들이 움직이면 함께 튀어오른다

피나가 감독한 무대는 다양한 연출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셀 수 없이 많은 카네이션을 쌓아 올리기도 하고,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물을 이용하기도 했다. 한국을 주제로 한 <러프 컷(Rough Cut)>에서는 무대 뒤를 가득 채우는 암벽에 등산객이 올라가 있기도 했다. 이런 무대 장치는 기존의 형식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었다.

흙과 물, 바위, 동물 등 관객들의 상상을 깨는 소품들을 이용하기 위해 벌어졌던 에피소드는 다양하다. 물 웅덩이에서 첨벙이며 몸을 움직이는 무용수들 덕에 관객들이 물세례를 맞기도 하고, 뉴욕 초청공연에서는 뉴저지에서 오는 물탱크를 공수하느라 몇 시간 동안이나 공연이 지연되기도 했다. 양이 무대 위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닭이 수박을 쪼아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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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표현한 작품 <러프 컷(Rough Cut)>

피나의 안무가 세계의 관심과 명성을 얻고 그를 바탕으로 세계의 무대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그녀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무대들을 만들어왔다. 그중 세계의 도시에 체류하며 그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도시/국가 시리즈’라 불리는 작품들은 스페인 마드리드, 오스트리아 빈, 미국 LA, 홍콩, 일본, 포르투갈, 헝가리 부다페스트, 터키 이스탄불, 인도, 칠레 등 전세계 15개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 한국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무대 뒤 웅장하게 자리잡은 암벽과 그 위에 오르고 있는 등산객이 인상적인 작품 <러프 컷(Rough Cut)>이 그 주인공. 한국의 아름다운 산세와 한국인들의 독특한 생활법,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회를 표현한 이 작품은 2005년 작으로, 이 공연을 통해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린 피나는 대한민국 문화예술 명예홍보 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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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나> 속, 피나를 회고하는 무용수들

항상 무용단과 함께 세계를 누비던 그녀는 2009년 6월, 폴란드 공연에서는 함께 할 수 없었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도저히 함께 움직일 여력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단원들에게 몸이 너무 좋지 않아, 함께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 양해를 구한다던 모습이 단원들이 본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지 단 5일 후의 일이었다. 춤, 그리고 무대 밖의 삶이 없는 것처럼 살아온 그녀의 삶은 죽음마저도 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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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무용수들은 저마다의 확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부퍼탈 탄츠테아터 단원들의 구성은 여느 무용단과 조금 다르다. 20명 남짓한 무용수들의 국적은 16개, 환갑을 넘긴 무용수부터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 무용수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각자의 다양한 개성을 가진 무용수들을 그녀는 십분 활용했다. 무용수 한 명, 한 명에 초점을 맞추어 무대를 채웠고, 그 내면에 집중해 안무를 만들어 갔다. 인간에 집중하고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기로 유명한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피나는 단원에게 먼저 나가라는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결원이 생기지 않고, 오디션 자체가 4~5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 이나마도 한 번의 오디션에 세계 각지에서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려 단원이 되는 기회를 잡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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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나> 속 한 장면

얼마 전, 우리나라에 한 영화가 개봉했다. <피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 영화는 그녀의 작품에 반해 오래도록 친분을 이어온 감독 ‘빔 벤더스’의 영화로 그녀의 대표작 4개(<카페 뮐러>, <봄의 제전>, <콘탁트 호프>, <보름달>)로 이루어졌다. 영화를 보는 이를 무대 앞으로 끌어오고 싶었던 베더슨의 꿈은 3D를 통해 이루어 질 수 있었다.

25년간 미뤄졌던 영화는 촬영 이틀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피나로 무산되는 듯 했다. 피나 없이는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추억하고 싶었던 단원들의 간청으로 영화는 제작될 수 있었다. 무대 앞을 넘어, 무대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빔 벤더스의 영화 <피나>는 물방울마저 춤추게 하는 피나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피나
감독 빔 벤더스 (2011 / 독일,프랑스,영국)
출연 피나 바우쉬,부퍼탈 무용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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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나는 물방울조차 춤추게 한다

빔 벤더스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의 부인 ‘도나타 벤더스’은 피나의 사진을 찍어왔다. 물방울과 함께 춤을 추는 듯한 사진은 영화 포스터에 쓰일 정도로 생동감이 살아있다. 피사체의 내면을 섬세하게 찍는다는 평가를 받아온 도나타의 사진 속 피나의 모습은 10월 26일까지 마포구 서교동 갤러리 잔다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주)갤러리잔다리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0-12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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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연을 위해 비행을 미룰 정도로 애연가였다

마른 몸, 그 위에 검은색 옷을 입고, 하나로 질끈 묶은 긴 머리. 이 외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면 손에 들린 담배가 아닐까? 그만큼 피나는 담배를 사랑했다. 금연구역으로 지정되고 있는 세계의 유명 공연장에서 유일하게 흡연이 허가된 아티스트이기도 했던 그녀는 담배 때문에 비행기를 몇 시간씩 스톱시키기도 했다. 어떤 암이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병이 담배에서 온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외에도 작품 구상 중에는 커피를, 그 후에는 와인들 들고 지인들과의 대화를 즐겼다. 그녀의 작품 중 <왈츠(Walzer)>에 나오는 대사, “와인 조금만 더. 그리고 담배 한 개비만. 하지만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표현했다 빗대어 지고 있다.



무용, 연극, 음악, 영상 등 다양한 분야를 어울렀고, 이에 큰 영향을 끼친 안무의 혁명가 피나 바우쉬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가’보다 ‘왜 움직이는가’에 초점을 맞췄던 그녀의 작품은 감정의 표현을 넘어, 감정을 건드리는 큰 힘을 갖고 있었다.

쉼 없이 움직이는 몸, 그리고 말보다 진한 표현들로 무대를 채웠던 피나의 작품들은 여전히 세계를 다니며 공연되고 있다.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들은 강력한 존재감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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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wba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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